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1984) — 대부보다 뜨거운 노스탤지어, 시간이라는 이름의 비극
살다 보면 가끔 영화에 홀린다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최근 제가 그랬습니다. 장장 4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임에도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한 채 빠져들게 만든 작품,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1984년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입니다. 로버트 드 니로의 깊은 눈빛과 함께 흐르던 엔니오 모리코네의 선율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이나 가슴을 먹먹하게 흔들어 놓았습니다.
갱스터 영화의 바이블이라면 누구나 코폴라의 <대부>를 먼저 떠올립니다. 저 역시 <대부>를 명작이라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더 좋았습니다. <대부>가 거대한 패밀리의 위엄과 비극을 다뤘다면, 이 영화는 훨씬 더 개인적이고 서글픈 '우정'과 '시간' 그리고 '후회'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권력의 몰락보다, 지나간 세월 앞에 덩그러니 남겨진 한 남자의 뒷모습이 훨씬 더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1. 세르조 레오네 — 시간이라는 이름의 마법
많은 분이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이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작품으로 오해하시곤 하지만, 이 영화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거장 세르조 레오네가 평생을 바쳐 준비한 꿈의 프로젝트입니다. 뉴욕 유대인 거리의 아이들이 거물급 갱으로 성장하고, 다시 노년의 쓸쓸함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지독하리만큼 아름답게 그려냈습니다. 어린 시절의 설렘과 노년의 회환이 겹쳐지는 그 연출력은 가히 예술의 경지입니다.
특히 어린 '데보라' 역의 제니퍼 코넬리가 창고에서 'Amapola'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장면은 충격적일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구멍 너머로 그 모습을 훔쳐보던 어린 누들스의 심정이 되어 저 역시 숨을 멈췄습니다. 그 맑았던 소녀가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변해가는 모습, 그녀를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온 주인공의 순애보는 이 영화를 단순한 범죄 영화를 넘어선 서정적인 서사시로 만들어 줍니다.
2. 대부보다 이 영화가 더 마음을 울린 이유
<대부>는 완벽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는 완벽을 넘어선 '아련함'이 있습니다. 주인공 누들스가 35년 만에 돌아와 친구의 배신과 자신의 상실을 마주할 때, 화면 속 그와 함께 늙어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봐 온 사람으로서, 영화 속 "인생은 덧없다"는 메시지는 그저 스크린 속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현실로 느껴졌습니다.
가보지도 못한 뉴욕의 뒷골목이 왜 그리울까요. 아마도 영화가 보여주는 정서가 장소가 아닌 '시절'에 닿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찬란했던 젊음과 뜨거웠던 우정, 돌이킬 수 없는 잘못들이 뒤섞여 만들어낸 그 묘한 분위기는 보는 내내 황홀한 최면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는 4시간 동안 저는 1920년대 뉴욕의 안개 낀 거리를 헤매는 이름 없는 관찰자가 된 것만 같았습니다.
마치며 — 삶이라는 긴 영화를 돌아보며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로버트 드 니로의 그 묘한 마지막 미소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뉴욕의 거리를 가보지는 못했어도, 이 영화를 통해 그 시절의 공기를 충분히 들이마셨고 그들의 상처와 치유를 함께했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영화입니다. 긴 시간을 견뎌내고 마침내 마주하는 감동은 짧은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묵직함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잊고 거대한 이야기 속으로 침잠하고 싶은 날, 이 작품을 권합니다. 루나의 필름 로그, 오늘 밤은 엔니오 모리코네의 팬플룻 소리를 들으며 지나온 시간을 가만히 다독여 보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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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나(Luna)는 이 블로그 운영자의 페르소나입니다. 감성 음악 채널 Blue Cat Luna를 운영하며 음악과 영화, 일상의 감성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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