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수 (Waterloo Bridge, 1940) — 흑백의 안개 속에 묻어두었던 나의 젊은 날
이 블로그를 쓰기 시작하면서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순서도 없이, 계획도 없이 — 어느 날 갑자기 잊고 살았던 영화 하나가 불쑥 떠오릅니다. 그러면 저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자리에 앉아 그냥 씁니다. 오늘도 그랬습니다. 창밖을 보다가 문득 비비안 리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고, 손이 먼저 키보드 앞으로 갔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새삼 깨닫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바쁘게 살면서 나를 잊고 살았는데, 영화 이야기를 쓸 때만큼은 오래전의 내가 그대로 거기 있습니다. 10대였는지 20대였는지 가물가물하지만, '주말의 명화' 시그널 음악과 함께 만났던 <애수(Waterloo Bridge)>. 그 밤의 공기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1. 사람들이 모르는 비비안 리가 여기 있다
사람들은 비비안 리 하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강인한 스칼렛 오하라를 먼저 떠올립니다. 저는 다릅니다. 이 영화 속 가냘프고 위태로운 '마이라'가 훨씬 더 마음에 걸립니다. 거대한 역사 앞에서 당당하게 살아남는 이야기보다, 운명의 장난 앞에 조용히 무너져 내리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저는 더 좋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습니다. 해피엔딩보다 비에 젖은 듯한 결말에서 더 큰 위안을 얻었으니까요. 그게 제 취향이고, 어쩌면 제 정서였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세 번 넘게 봤는데, 볼 때마다 똑같은 대목에서 엉엉 울었습니다. 그 장면은 바로 워털루 다리에서의 재회입니다. 죽은 줄 알았던 연인 로이가 살아 돌아왔을 때, 마이라가 느꼈을 환희와 절망이 뒤섞인 그 표정. 가장 기뻐해야 할 순간에 가장 큰 수치심을 느껴야 했던 여자. 화면을 붙잡고 같이 통곡하고 싶었습니다.
2. 흑백이라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이 보였다
전쟁이라는 비극이 한 인간의 삶을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지, 이 영화는 묵묵히 보여줍니다. 흑백 화면이라 그럴까요. 안개 자욱한 다리 위에서 로이를 바라보던 마이라의 눈동자는 컬러 영화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요즘처럼 자극적인 영상이 넘쳐나는 시대에, 낡은 흑백 필름이 오히려 더 진하게 감정을 건드립니다. 기술이 줄 수 없는 진심이 거기 있기 때문이겠죠.
다들 저마다의 워털루 다리를 건너며 상처받고, 또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살아갑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삶을 곁에서 들여다보아 온 저는 그걸 압니다. 영웅담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마음의 소용돌이가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어두운 그림자가 있어야 빛의 소중함을 안다는 걸, 이 흑백영화 한 편이 오래전부터 속삭여주었습니다.
마치며 — 잊고 살았던 내가 거기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자꾸 멈추게 됩니다. 그 시절의 제가 생각나서. 주말 밤 TV 앞에 앉아 성우들의 차분한 목소리와 함께 흑백 영상에 빠져들던 그 소녀. 바쁘게 살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그 순수한 감성이 지금도 제 안에 살아있다는 걸.
오늘 밤은 창밖을 보며 이 영화의 주제곡 'Auld Lang Syne'을 나지막이 읊조려 봅니다. 마이라의 비극적인 사랑을 통해 우리는 역설적으로 사랑의 숭고함을 확인합니다. 비가 오거나 마음이 적적한 날이면 저는 여전히 제 마음속의 워털루 다리를 거닙니다. 루나의 필름 로그, 오늘은 안개 낀 런던의 다리 위에서 오래된 저를 다시 만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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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나(Luna)는 이 블로그 운영자의 페르소나입니다. 감성 음악 채널 Blue Cat Luna를 운영하며 음악과 영화, 일상의 감성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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