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사랑 (Endless Love, 1981) — 천안 아카데미 극장 뒷문과 나의 첫사랑 영화
제 친구가 천안 아카데미 극장 주인의 딸이었습니다. 진짜입니다. 덕분에 저는 남들이 표 구하려 줄을 서던 시절, 극장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 영화를 보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어두컴컴한 통로를 지나 자리에 앉을 때의 그 짜릿함이란 —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 수많은 영화 중에서 제 영혼을 온통 흔들어 놓은 작품이 바로 1981년작 <끝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이 블로그를 쓰면서 새삼 깨닫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영화를 사랑했던 사람이었구나. 바쁘게 살다 보면 자신을 잊고 사는 시간이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영화 이야기를 쓰다 보면 그 시절의 내가 그대로 거기 있습니다. 뒷문을 열어주던 친구의 손길, 극장 안의 눅눅한 공기, 화면을 가득 채우던 그 소년의 눈빛까지.
1. 브룩 쉴즈보다 빛났던 나만의 우상
남들은 당대 최고의 미녀 브룩 쉴즈에 열광했습니다. 저는 달랐습니다. 제 눈에는 남자 주인공 마틴 휴잇만 보였습니다. 사랑 때문에 고뇌하고 절규하던 그 소년의 눈빛. 첫사랑에 눈이 멀어 집을 태울 정도로 무모했던 그 열정. 어른들 눈에는 광기였겠지만, 뒷문으로 몰래 들어와 숨죽여 보던 10대의 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사랑이었습니다.
영어를 좋아하던 소녀였던 저는 영화 대사를 통째로 외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 그건 사실 공부에 대한 열정이 아니었습니다. 그 소년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 느끼고 싶었던 순수한 팬심이었겠죠. 얼마나 많이 봤는지, 'Endless Love'가 흐르기 시작하면 제 마음은 이미 천안이 아니라 영화 속 시카고의 어느 거리로 날아가 있었습니다.
2. 지금은 부산에 사는 그 친구에게
그 극장 주인의 딸, 제 친구는 지금 부산에 살고 있습니다. 가끔 연락이 닿으면 우리는 그 시절 이야기를 합니다.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던 것, 들킬까봐 조마조마하던 것, 함께 화면을 보며 울고 웃던 것. 아카데미 극장은 이제 사라지고 없지만 그 시절은 우리 두 사람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습니다.
사람은 어떤 장소와 함께 청춘을 기억합니다. 저에게는 천안 아카데미 극장이 그 자리입니다. 그 어두운 통로를 지나 자리에 앉아 화면이 밝아오던 순간, 저는 매번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 자유를 선물해준 건 영화였고, 뒷문을 열어준 건 친구였습니다.
3. 첫사랑이라는 이름의 열병이 남긴 것
나이가 들어 오랫동안 사람들의 삶을 곁에서 들여다보다 보니, 영화 속 데이비드와 제이드의 사랑이 얼마나 위태로운 것이었는지 이제는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압니다. 인생에서 한 번쯤은 앞뒤 재지 않고 불꽃처럼 타올랐던 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이만큼 단단해질 수 있었다는 것을요.
지금도 비가 오거나 적적한 날이면 다이애나 로스와 라이오넬 리치가 부른 'Endless Love'를 찾아 듣습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어두컴컴한 극장 통로와 마틴 휴잇의 슬픈 눈동자가 어제 일처럼 떠오릅니다. 인생은 영화처럼 끝없는 사랑만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의 기억이 주는 온기 덕분에, 우리는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 모양입니다. 루나의 필름 로그, 오늘은 천안의 어느 골목에서 시작된 저만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꺼내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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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나(Luna)는 이 블로그 운영자의 페르소나입니다. 감성 음악 채널 Blue Cat Luna를 운영하며 음악과 영화, 일상의 감성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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